[퍼옴-정선기관지 아라리 신문]문해(文解)교육과 AI(인공지능)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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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서울을 자주 방문한다. 그런데 서울에서 온종일 생활하다보면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끼니를 제때 해결하지 못해 햄버거 가게나 식당에 들어갔는데 “지금은 주문을 기계로만 받습니다!”라고 쓰여 있는 경우에 30년 동안 정보통신 관련 일을 한 필자임에도 처음 방문한 가게에서는 한참 동안 다른 사람의 주문 모습을 곁눈질하거나 때로는 주문을 포기하고, 다른 식당으로 옮기곤 한다.
이런 상황은 차를 몰고 무심코 들어간 주유소가 사람이 없는 셀프 주소일 때도 그렇고, 전철을 타기 위해 표를 끓으려는데 창구에 직원은 없고, 덩그러니 자동판매기만 있을 때도 그러하다. 분명 다양한 글과 기호로 설명이 쓰여 있음에도 쉽게 이해가 안 되고, 다른 사람의 눈치가 보여 쉽게 작동도 할 수가 없다. 이럴 때는 마치 외국 어딘가에 홀로 서 있는 듯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우리 사회의 많은 곳에는 이러한 자동화 기계들이 있다. 은행에는 돈을 찾는 ATM과 공과금을 내는 기계가 있고, 기차역에는 기차표 자동판매기가 있으며 주유소에는 무인 주유기가 있다.
늘 내 곁에 있는 스마트폰도 이런 기계의 일종이다. 이런 기계들은 사람이 직접 처리하는 것에 비해 빠르고, 심지어는 처리하는 가격이 싸다. 하지만 이런 기계들을 자주 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기계를 사용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사용법을 몰라서 상대적으로 더 비싸고, 더 느리게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자동화 기계의 사용법은 한두 번 정도 해보면 다음에도 어렵지 않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은행의 현금자동인출기를 처음 사용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혹시 돈이 안 나오면 어쩌나, 기계가 카드를 먹어버리면 어쩌나 등 고민을 했지만 누군가의 도움으로 처음 사용 한 후부터는 대다수의 사람이 쉽게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빠르게 보급되는 이런 자동화기계를 배우고 실습해 볼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다. 그저 첨단기술에 익숙하거나 도전 정신(?)이 많은 사람만 재주껏 배워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중장년이나 노년 그리고 농촌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첨단 기술로부터 소외당하게 하고, 그들은 젊은 사람들이나 도시에 사는 사람에 비해 더 느리고, 비용은 더 지출하는 차별을 당하게 한다. 인공지능을 뜻하는 AI라는 말은 어느새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거의 매일 TV나 인터넷, 신문 등을 통해 소개되고, 우리 실생활에 가까이 왔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학습하고, 배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백만 원이나 되는 스마트폰을 사서 이에 걸맞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문해(文解)라는 말이 있다. 아직 많은 사람에게 낯설고 생소하다. 대한민국이 산업 사회로 들어가던 시기인 1960~1970년대 우리나라는 글을 읽고 쓸 수 없는 사람들을 뜻하는 문맹자가 많아 ‘문맹을 퇴치하자!’ 라며 한글 배우기 운동을 전 국민적으로 전개했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문맹률은 2008년 통계청 조사 기준으로 1.7%에 불과해졌다. 실로 대단한 성과라 아니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글자를 읽는 것과 글을 해독하는 것은 다르다. 알파벳 E,X,I,T를 읽을 수 있지만, 이것이 ‘출구’를 의미하는 것으로 아는 것은 다르다. 문해(文解)는 이처럼 글로 쓰인 단어나 문장을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혹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글, 문장, 기호를 보면 생활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글자라는 것은 말을 표현하는 하나의 기호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도 영어도 한자도 그렇다. 만들어진 방법은 다르지만 인간의 말을 기호로 표현하여 서로가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글자이다. 그런데 사회가 발전하면서 말을 글로 표현하는 방식들은 한글이나 영어만이 아닌 그림이나 기호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한다. 첨단 기계일수록 사람들이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간단하고, 다양하게 표시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글, 영어, 한자, 기호 등이 뒤섞인 글자와 책자 형태의 정보로도 표현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기호나 정보지에 익숙한 젊은이들은 쉽게 정보를 이해할 수 있지만 기호나 첨단 용어들을 다뤄보지 않은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의 사회는 이런 것들을 모르면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아야한다. 인공 지능을 가진 기계나 자동화된 기계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이것에 기인한다. 우리 지역 사회에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한글과 셈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있고, 문해교육이란 이름으로 이들에게 글과 셈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 정선은 전국적으로 모범 사례로 뽑힐 만큼 문해교육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문해교육의 폭을 넓히는 것을 고민할 때가 되었다. 한글을 읽고, 쓰는 수준을 넘어서 정보를 이해할 수 있고, 자동화 기계를 작동할 수 있으며, 금융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교육으로 폭을 넓혀야 한다. 물론 각 분야의 심도 있는 교육은 별도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 글, 영어, 금융, 정보, 교통 등 다방면의 문해교육은 선택이 아닌 생존과 생활을 위한 필수 교육이 되어야 한다.
필자가 중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공중전화 부스에 전화를 걸기 위해 기다리다 보면 가끔 전화 사용법을 모르는 어른들이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보여주며 ‘이리로 전화 좀 해주게’ 라고 부탁하곤 했었다. 앞으로 20년 후, 아니 10년 후 내가 어느 식당 앞에 서서 ‘비빔밥 하나만 주문해주게’라고 젊은 사람에게 부탁해야만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것은 남의 일도 아니고, 먼 미래의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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